고질적 불치병을 앓고 있는 한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고질(痼疾), 불치(不治), 전이(轉移)라는 세 가지 중증장애에 걸려있다. 고질이라 함은 한국 연예계가 오랫동안 앓고 있는 병이기 때문이며, 이를 고치기가 가능해 보이지 않아 불치이다.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고질적 불치의 고통이 연예계를 동경하고 동일시하는 청소년들에게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 4개월여 동안 연예계관련 비리 집중단속이 실시됐다. 경찰의 이 단속을 통해 한국 연예계가 기나긴 세월 앓고 있는 고질적인 장애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가수가 라디오나 케이블방송을 타기 위해서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의 금품을 지급해야했다. 연예계 관련 비리단속에서 방송청탁을 의뢰하기 위해 금품을 주고받다 적발된 브로커와 PD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력 있는 가수를 향한 팬들의 사랑과 관심보다는 돈의 힘이 인터넷 가요순위 사이트를 움직인 것이다.
한 가요순위 검색 사이트에서는 순위 조작의 대가로 신인가수로부터 4억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 순위 조작의 대가가 4억이라니... 연예인지망생을 현혹해 방송출연을 약속하고 1억7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긴 연예기획사 대표도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 119명이 보증금 명목으로 기획사 대표들에게 건넨 돈도 무려 10억 여원에 달했다. 이쯤 되면 고질도 심각한 고질이다. 한국 연예계가 난치병 수준이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청은 4개월 여동안의 연예계관련 비리 집중단속 결과를 발표하며 연예기획사 대표, 지방의 라디오 및 케이블방송 PD, 관련 협회 간부 등 140명을 적발했다고 했으며 연예계관련 비리의 피해자 중 97%가 연예인지망생이었다고 밝혔다. 이 말은 피해자의 97% 가까이는 10대와 20대 청소년이었다는 이야기다. 보도자료는 위와 같은 행태를 일부 지방의 방송가에서 벌어진 일로 한정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지난 몇 년간 각종 포털사이트에 뿌려진 연예계 관련 비리 뉴스들의 제목을 검색해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연예계의 부조리와 비리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예계 비리는 가깝게는 1990년대 초에서 멀게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은 7명의 PD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발생한다. 1990년에는 방송사 연예담당 PD들의 뇌물사건이 세간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1993년에는 정·재계인사와의 연예인 윤락행위가 밝혀졌다. 한국사회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1995년도에는 방송사 간부에 대한 연기자의 성 뇌물 상납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뜨기 위해서, 방송출연을 위해서 말로만 듣던 몸 로비가 행해진 것이다. 이른바 금품 상납과 성상납이라는 고질적인 한국연예계의 비리가 게슴츠레한 눈을 부라리며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뜨겠다는 일념으로 돈과 섹스를 바쳤다’
물리학에 상대성이론(E=mc^2)이 있다면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접대의 법칙’이 있다. ‘접대=방송출연’이라는 공식이다.
‘뜨겠다는 일념으로 돈과 섹스를 바쳤다’ 이것은 19금 성인영화의 제목이 아니다. 2002년 9월호 <월간중앙>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방송사 공채 출신 탤런트 K씨와 배우 지망생 P양의 충격 체험을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편집자는 이 글의 서두에서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연예계 비리 수사. 국내 일류 기획사, PD와 연예기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연예계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까. 스타덤을 향한 마약중독과 같은 열망, 그 열망을 이용해 돈과 쾌락을 탐하는 일부 세력…. 연예계 비리의 근본 구조를 고발하는 두 사람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봤다.”는 말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기사는 돈을 지불한다는 페이(Pay)와 LP 레코드플레이어인 빅트롤라(Victrola)의 합성어인 ‘페이올라’(Payola)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페이올라가 무엇인가? 페이올라는 레코드업자들이 DJ에게 특정곡을 틀어달라고 불법적으로 주는 금품을 지칭한다. ‘지불=방송’이라는 미국판 ‘접대의 법칙’을 지칭한 연예계 비리다. 미국 의회는 1960년 연방통신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페이올라’(Payola)를 범죄로 규정하고 1만 달러의 벌금, 1년의 실형을 적용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페이올라는 20세기 미국 대중음악계 최대 추문 가운데 하나이다. ‘지불=방송출연’이라는 페이올라가 ‘접대=방송출연’이라는 형식으로 국내 연예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판 연예계의 ‘접대의 법칙’을 들여다보자.
이야기는 2000년 4월, 종합 연예기획사인 (주)SM엔터테인먼트가 벤처 붐을 타고 주당 1만2000원에 코스닥에 상장되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이후 지분 67%를 보유한 대주주 이수만 씨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의 내용과 검찰 수사 와중에 SM의 초기 주주 명부가 공개됐는데 코스닥 등록 직전의 주주 42명 이름이 기재된 이 명부에는 PD 및 구성작가 출신 방송계 인사, 현직 방송사 간부의 부인과 개그우먼 등이 포함돼 있었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요점은 검찰이 PR비 명목의 주식로비에 중점을 맞춰 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페이올라가 금품, 향응제공, 성상납에 이제는 주식로비로까지 이어진 정황들이 포착된 것이다.
이어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는 연예기획사로부터 주식이나 금품을 받은 지상파 방송의 PD와 스포츠신문 기자 등을 사법처리하고 4대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전례 없는 강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칼을 든 검찰이 한국 연예계의 환부를 수술할 수 있었을까?
페이올라는 자판기처럼 돈을 주면 음악이 나온다는 의미로 DJ에게 돈을 주면 음악이 나오는 것을 빗대었다. 실제로 1페니는 1회 방송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1950년대의 미국은 DJ들이 진행하는 음악순위 프로그램이 음반 판매의 척도가 되었던 시기다. 따라서 음반업자들은 음반의 높은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DJ들과 음악프로그램 관계자에게 금품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하원은 1959년, 뇌물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1960년 9월, 페이올라를 범죄사건으로 다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DJ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앨런 프리드’(Alan Freed)와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아메리카 밴드스탠드’를 진행하던 ‘딕 클락’(Dick Clark)이 치명상을 입었다. 로큰롤을 전파한 일등공신인 두 사람이 페이올라 사건으로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 음악계와 방송계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방송계는 연출자가 음악을 선곡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연출자나 작가, DJ가 선곡을 하더라도 반드시 음악전문가인 프로그램 디렉터의 허락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의 공정성은 빌보드 등 음악차트에도 영향을 미쳐 이들 차트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여기서 한국의 음악차트는 어떤가? 한국연예계의 비리의 정점에는 PD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은 시스템이 아닌 PD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연예방송이나 오락프로그램에서 이와 같이 PD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농담이나 직간접적 아부성 발언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순위조작이니 금품수수니 하는 말이 나오면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당사자를 문책하거나 자리를 이동하는 식의 처방이 내려진다. 이는 만성두통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는 생각지도 않고 진통제나 투여하는 돌팔이 의사와 다른 게 무엇인가? 절대적 우위를 점유한 한두 사람에 의해 연예인의 생사여탈(生殺與奪)이 결정되는 구조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몸로비와 주식로비를 넘어 더 치밀하고 과감한 로비가 계속될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삐걱삐걱 대며 돌아가는 세상
다시 <월간중앙>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페이올라 사건을 처리하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다른 점에서 오는 좌절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에서 연예인들이 연예계의 비리수사를 누구보다 반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1990년, 95년에 연예계 비리수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용두사미로 끝난 것을 기억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전에도 연예계 비리 수사라며 몇몇 유명 PD나 연예인들을 내세워 한껏 부풀려 놓았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고 문제의 PD들도 대부분 현업에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는 더 처절한 돈과 섹스 이야기를 전해준다. 뜨겠다는 일념으로 돈과 섹스를 바친 연예인들의 이야기다. 한국연예계의 가슴쓰린 이야기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기사에서 뽑은 문장 몇 줄 소개한다.
“이혼녀의 후원금으로 로비하는 처량한 신세, 연예계 생활 10년에 체득한 노하우라면 영양가 있는 로비 대상을 파악하는 일이다, 방송국에서 받는 월급과 몇몇 드라마에 단역으로 얼굴을 비치고 받는 출연료를 모두 로비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모델대회 입상 후 술자리에만 불려가, 회당 4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았지만 그중 3만원은 소개비라며 연기학원이 챙겨갔다, 술을 따랐던 여자들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뒷바라지해 줄 테니 애인 해달라, 공채 여자 동기 중에는 갑자기 명품으로 치장하거나 외제차를 타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백발백중 ‘스폰서’를 문 경우였다, 1년 정도의 가수 활동으로 사촌동생이 번 돈은 한푼도 없었다, 캐스팅된 드라마에서 조연출은 대놓고 10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랑 한번 자면 기획사와 계약하게 해 주겠다, 그렇게 10여명의 매니저들과 성관계를 가졌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위와 같은 방송출연 뒷거래를 다룬 기사를 보면 그 실태가 가히 충격적이다. 많이 과장됐거나 매우 극소수의 행태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몇 년 후, 정확하게 2009년, 고 장자연 씨가 등장한다. 소설 같던 탤런트 K씨, 배우 지망생 P양의 이야기가 실제로 현실에 드러난 것이다. 장 씨의 이야기는 설마 했던 <월간중앙>의 기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 장자연 씨는 소속사의 대표와 고위직 인사들로부터 성상납과 술 접대를 강요받았으며 심지어 폭력까지 당했다고 했다.
이 사건은 <타임>을 비롯한 세계 여러 매체들에서 이슈가 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방송과 매체들이 연일 장자연씨의 죽음과 연예계의 성상납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한 꿈 많은 여배우의 죽음을 통해 그의 꿈을 짓밟은 사람들이 처벌되고 정의가 세워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연예계의 성상납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는 것 외에 연예 지망생들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 더불어 고 장자연 씨 사건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이 되었다.
이쯤 되면 욕설 섞인 DJ DOC의 ‘삐걱삐걱’이 들려온다.
“삐걱삐걱 대며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을 돌봐주지 않아. 있는 사람은 항상 있지, 없는 사람은 항상 없지, 어떻게 바꿔볼 수가 없지, 도저히 우리 힘으론 안 되지!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백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이에요. 착하게 살긴 아픔이 너무 많아요... 나 어렸을 때 싸움 좀 했을 때 깐죽대는 녀석과 싸웠는데, 그 녀석이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잡새의 얼굴이 바뀌고,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 없고 백 없는 내가 죄~!”
삐걱이 세상이 내린 장자연 씨 사건의 결론이다.
“술자리에는 좋아서 간 것 아닐까?”
“증거 불충분 무혐의!”
김현청 kim@hyuncheong.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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