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 동방신기도 ‘88만원 세대’(?)”
그즈음 인터넷에는 ‘동방신기-SM 전속계약서 주요 전문’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한 언론사 법조팀 출입기자의 블로그에 공개된 이 문건에는 ‘전속계약 제2조 – 장기간의 계약’ ‘전속계약 제9조 – 수익분배 규정’ ‘전속계약 제11조 – 수천억 원의 손해배상액’ 등 SM과 동방신기가 맺은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계약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기자는 3인 멤버들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A4용지 28장)를 읽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면서 “한류스타 동방신기도 ‘88만원 세대’”라고 꼬집었다. 20대가 노동의 대가만큼 대접받는 게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인가 싶어서라는 속 아린 지적도 덧붙였다.
동방신기가 낸 가처분신청서 내용을 요약 분석한 이 문건이 세인의 큰 주목을 끈 이유는 치열하게 전개되던 양 측 진실공방의 중심에서 객관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많은 이들은 동방신기와 소속사 간 부당계약의 면면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멤버들의 계약기간은 당초 2003년 6월 30일부터 시작해 첫 번째 음반의 발매 후 10년째 되는 날 종료하기로 했으나, 첫 번째 음반 발매 즈음인 2004년 1월 12일에 13년으로 변경되었다.
또 군 복무 등 ‘개인 신상에 관한 사유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계약기간은 위 기간만큼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내용도 같아 “전속계약 기간은 사실상 종신계약을 의미한다.”는 멤버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특히 음반 이익금의 분배 시 정규앨범의 수익부분에만 멤버들이 수익금을 분배받을 수 있도록 한정되어 있으며, 2차적 편집물인 라이브음반, 베스트음반, 옴니버스음반, 기타 모음집 등에 의한 수익은 모두 SM 소유로 규정되었다.
계약서에는 이와 함께 방송, 행사, 광고, 초상권 등에 대한 이익금 분배는 고정방송매체 출연 시 출연료의 40%를 소속사가 갖고, 고정출연 외의 게스트 및 가수로서의 방송출연료는 그룹의 홍보진행비로 전액 충당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동방신기는 그러나 당시까지 방송매체에 고정으로 출연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결국 멤버들의 TV 출연과 이로 인해 발생한 출연료가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대부분 SM의 호주머니에 들어갔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아울러 연예활동으로 발생하는 모든 수입 중 누적된 모든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수입의 40%가 소속사에 귀속되며, 멤버들의 개인 수입은 각 12%씩 할당된 것으로 드러났다.
위약과 손해배상청구 조항에는 계약 위반 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배상과 함께 신청인(동방신기)이 연예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나 행위를 일으켰을 때 그에 대한 전체의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또 그로 인해 연예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멤버의 활동을 중지시킬 수 있고, 당사자는 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약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아 두었다.
손해배상액은 당초 ‘음반제작비 및 기타 어떤 형태로든 지급되거나 사용된 제반비용의 3배, 잔여 계약기간 동안의 예상 이익금의 3배되는 금액, 그리고 일금 1억 원을 별도로 배상’하도록 했으나 앞서 부속합의를 통해 ‘투자액의 3배, 예상 이익금의 2배’로 변경되었다.
무엇보다 해약을 원할 때, 소속사와 멤버 간 쌍방이 합의한 경우에도 이 같은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자신들의 의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자사에 유리하도록 계약관계를 적용한 SM엔터테인먼트는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많은 팬들은 국내 연예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획사 중 한 곳인 SM에서 이렇게 상식 밖의 불공정계약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에 놀라워하며 “무게중심이 일방적으로 소속사에게만 기울어진 비정상적 구조의 부당계약”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자신들이 그동안 사 모았던 라이브음반, 베스트음반, 옴니버스음반 등 2차적 편집물에 대한 수익이 모두 SM의 소유였음이 드러나자 무척 허탈해했다.
“언제나 일부 악덕업자는 있는데 싸잡아 비판”
당시 이 문제를 취재하며 기사를 정리하던 중 문득 몇 개월 전 봤던 한 기사가 기억에 스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그룹 회장이 그해 4월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를 찾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의 내용이었다.
당시는 탤런트 장자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이들이 연예기획사의 불공정 관행과 착취에 대해 분노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이를 염두에 둔 듯 “‘노예계약’은 일부 악덕업자의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당시 <연합뉴스>에 보도되었던 강연 내용의 일부를 간추린다.
‘노예계약’ 일부 악덕업자 얘기?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그룹 회장은 8일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간의 이른바 ‘노예계약’ 문제와 관련해 “사람이 죽으니까 프로덕션은 다 (연예인들을)착취하고 악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그는 이날 서울대 기초교육원 주최로 열린 ‘관악초청강연’에서 탤런트 고(故)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염두에 둔 듯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우리 계약조건에 원치 않으면 방송에 안 나가도 된다고 쓰여 있고 결혼도 해도 된다.”며 “언제나 일부 악덕업자는 있는데 항상 싸잡아서 비판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 농업기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관심 있는 일, 열정이 생기는 일, 집중해서 밤을 새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열정은 잭 웰치의 책을 읽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 (후략)
시간이 꽤 흘렀건만, 다시 읽어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 정부는 지난 11월 21일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이수만 회장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날 수상소감에서 “연예계에 들어와 후회한 적이 없다. 연예계에서 죽을 예정”이라고 말했다.